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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에세이] 홍은전 작가의 “ 처음부터 다시”

2023-02-03
조회수 719

#비건에세이📖



글: 홍은전


“처음부터 다시”

 


2001년 서울 광화문에는 이전에는 한 번도 세상에 등장한 적 없던 어떤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 내내 집과 시설에 갇혀 살아왔던 장애인들이었다. 쇠사슬로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묶은 채 8-1번 버스를 에워싼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기어이 버스를 함께 타겠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수백 명의 비장애인 경찰들이 체포하기 시작했다. 2001년 우연한 인연으로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면서 장애인들을 처음 만난 나는 이 시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장애인의 70.5%가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처참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장애인이 그렇게 사는 것은 ‘문제’라고, ‘차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존재들이었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기 위해선 그 문제와 싸울 의지가 있거나 최소한 직면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버스와 싸운다는 건 얼마나 막막하고 답이 없는 일인가. 고작 버스를 타게 해달라고 외치는 건 또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 일인가. 그러니 사람들은 문제를 보고서도 문제를 덮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아무 문제 없는 듯이 살아가기로 하는 것이다. 2001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 모든 것들을 문제 삼고 싸우기로 한 사람들, 실패할 것이 분명한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비장애인 중심의 질서와 문명을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시작된 장애인 권리 투쟁의 시작이었다.


나는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우리는 장애인은 탈 수 없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를 점거했다. 우리는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 선로를 막았다. 당장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막힌 비장애인들이 길길이 날뛰며 비난을 퍼부었다. 겨우 30분을 늦은 사람들이 30년을 늦은 사람들을 향해 ‘병신이 벼슬이냐’고 조롱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법을 어겼다고 했다. 그 말은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서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는 버스를 점거했다. 누군가의 이동을 방해했다. 동시에 차별과 배제, 격리와 소외를 방해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막았다. 동시에 장애인의 죽음을 막았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동시에 우리는 노인과 아픈 사람, 장애인을 버리고 폭주하는 이 야만적인 사회의 발목을 잡았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 이동하기 위해선 이 사회가 통째로 이동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뼈가 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수억의 벌금을 냈고 누군가는 구속되었다. 그렇게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왔다. 나는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럽다.


2020년 서울 광화문엔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어떤 ‘동물’들이 출몰했다. 그들이 상의를 벗자 젖가슴에 붉은 피 분장을 한 맨몸이 드러났다. 인간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발렌타인 데이였다. 그들은 인간이 소비하는 빵과 우유,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새끼를 빼앗기고 젖을 착취당하며 죽어가는 소들이 있음을 폭로하고자 했다. 기업의 이윤과 소의 고통이 극대화되는 발렌타인 데이였다. 축산업의 폭력으로 인한 동물의 고통에 연대하기 위해 한겨울의 광화문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여성들 옆엔 “동물해방”이라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맹렬히 비폭력적이고 맹렬히 과격한 그들의 시위가 충격적으로 멋있어서 나는 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인간도 동물이다.”

“동물들의 고통에 연대한다.”

“우리는 동물을 위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한 세대 안에 이룰 것이다.”

모르는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 이토록 낯설고 아름답고 혁명적인 조합은 처음 보았다. 그들은 며칠 전 내가 도살장 앞에서 만났던 동물권 운동가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여성 돼지가 평생 고문 틀에 갇혀 강간당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새끼를 빼앗기는 곳에 도둑처럼 침입해, 아기 돼지 ‘새벽이’를 구조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이 구하지 못했고 결코 구할 수도 없는 수많은 돼지들, 그 지옥 같은 곳에 남겨두고 온 수많은 ‘새벽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도 없이, 햇볕도 없이, 끔찍한 냄새와 피부병을 달고, 오직 살이 찌는 기계로 짧은 생을 살아가는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도살장이었다. 생애 첫 외출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외출이라고 했다. 한 번도 삶을 살아보지 못한 채 떠나는 그들을 보며 눈물 흘리는 인간들을 보았고 그들이 다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너의 두려움을 기억하겠다.”

“내가 이 고통의 증인이 되겠다.”

“내가 너의 목소리를 전해주겠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들의 몸을 소처럼, 닭처럼, 돼지처럼 결박하고 도살장을 막는 것을 보았다. 나는 조금 울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내 동료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숨 쉬는 것 빼곤 모든 게 차별’이라고 말했던 내 친구들의 얼굴, 선을 넘지 않고는 자신이 겪은 것 중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었던 어떤 인간들의 절박함을 보았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이것은 모든 싸우는 인간들의 구호이다. 동물해방 운동가들은 이 의심의 여지 없는 인권의 구호를 들고 가장 문제적인 장소로 이동함으로써 동물들의 죽음 위에 지어진 인간의 일상을, 이 값싼 평화를, 이 잔인한 문명을 모조리 문제 삼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사회 전체가 거대한 도살장임을 폭로했다. 이 사회가 통째로 변하지 않는 한, 자신들이 만난 저 죄 없이 고통받는 수많은 동물 중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진실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동물해방 운동가들을 보며 또 한 번 느꼈다. 진실을 본 존재는 반드시 선을 넘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혁명적인 말은 신문이나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말은 인간의 납작한 언어로는 결코 표현되지 못한다. 오늘 이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인 말, 지금 우리가 들어야 할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말은 소와 돼지, 닭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선을 넘은 존재들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세계가 있다. 그들로부터 더 위험하고 더 아름다운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차별과 폭력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연대와 해방, 아름다움과 혁명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싶다.


나는 내 인생의 세 번째 학교에 입학한 기분이다. 첫 번째 학교는 비장애인 중심의 경쟁 교육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두 번째 학교가 이 문명이 철저하게 배제한 존재들, 그러니까 장애인의 자리로 나를 데려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면 세 번째 학교는 이 문명이 체계적으로 착취한 존재들, 그러니까 동물의 자리로 나를 데려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 인간중심적 세계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이 새로운 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시선을 줄까.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 가슴이 뛴다.


 홍은전 작가의 비건에세이 첫 번째 이야기 “실패할 것이 분명한 이야기”  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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