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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접하면서도 생명체(였던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더 이상 먹히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을 즐기며 살기 원했던 생명체로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채식은 목표인가, 목적인가?

2026-05-28
조회수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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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는 사람과, 동물, 환경이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더불어 살아가기’라는 대전제하에 하이 생각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오늘 그 첫 번째로 채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알려주십시오. 앞으로도 관련된 주제로 하이 생각을 알리겠습니다. 여러분도 평시 생각하고 있던 이슈나 의견을 저희에게 알려주십시오. 다음 글들은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채식은 목표인가, 목적인가?

 

‘채식’ ‘채식주의자’란 말은 더 이상 이상하고 신기한 용어가 아니다. 특히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가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내용이 채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국내, 외적으로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요즘 추세 중 하나는 환경, 건강, 동물권 등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나의 섭생을 변화시켜 환경이, 건강이, 동물의 삶이 나아진다면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채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일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채식을 잘못 해석하고 '채식주의자'와 같은 용어에 집착하는 것이다. 채식은 특별한 행동이 아니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채식만 고집하는 것도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후자 그룹을 채식주의자로 규정해서 마치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채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고기에 대한 과몰입이 만들어낸 편견이다.

 

우리 조상들은 굳이 채식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주변에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주로 채소였고 고기는 특별한 경우나 날에 먹을 수 있는 식재료였다. 현재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채소나 고기 등 식단에 제한을 받진 않는다. 채소든 고기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채소를 즐기는 사람들을 '채식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특별한 취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채식은 소수의 섭생으로 치부되며 '-주의자' 란 용어로 범주화한다.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육식주의자'로 칭한다 하더라도 이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언제부터 채소를 즐기고 고기를 먹지 않는 행동이 특별한 것이 되었을까?

 

‘채식주의자(vegetarian)’라는 말은 육식 위주 식단을 가진 서양에서 비롯되었다. 주식으로 고기가 많은 서양인들에게 채식은 좀 특별한 행동이었고 이를 지칭하는 용어도 생긴 것이다. 한국에 채식주의자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반 근대화 시기였고, 이미 채식이 주식이었던 한국에 서양식 문화가 유입되면서 한국에서도 채식은 점차 특이한 현상이 되었다.

 

본래 채소가 주된 식재료였던 한국에서 오히려 신기한 단어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육식주의자’이다. 그럼에도 ‘나는 채식주의자예요’라고 말한다면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쳐다보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채식이 우리 사회에서 특이한 현상 혹은 소수의 선택임을 잘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지방 자치 단체의 조례이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 중 14개 단체가 조례에 채식을 위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모두 채식, 채식 급식, 채식의 날, 채식 식당, 채식주의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특별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 각 조례는 채식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표와 다양한 노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채식과 채식 환경에 중점을 두면서도 대부분 조례는 채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치 않다. 주종이 바뀐 것이다.

 

오직 전라북도만이 채식, 채식주의자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식생활 개선, 저탄소 등 환경 보호를 강조하며 결국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자연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전라북도 조례는 채식이란 표현없이 채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준 훌륭한 사례이다.

 

많은 시민이 우리의 환경이 회복되기 힘든 상태로 파괴되었고 공장식 축산으로 발생한 각종 오염으로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병들어 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일부 시민은 나은 환경을 위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일부는 '나는 환경을 생각해서 혹은 동물권을 위해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거북하게 받아 들인다. 이 말을 수용하는데 환경 보호, 또는 동물권이란 말이 불편한 것일까, 채식이 불편한 것일까? 혹은 그 조합이 불편한 것일까?

 

채식, 채식주의자라는 특별한 단어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채식으로 유도하고 환경과,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채식의 날'을 정하거나 채식을 주창하는 캠페인들은 원래의 취지나 목적보다는 그 자체가 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채식을 권하는 캠페인이 반복될 때 종종 채식 자체가 '선'이라는 분위기를 양산할 수 있고 일부 시민들은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전라북도 조례처럼 실질적으로 시민과 시민들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접근한다면, 굳이 채식을 하라고 요구할 필요 없고 굳이 그런 강조를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편향된 섭생이 동물들의 고통을 야기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지적은 종종 일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고기를 안먹으면 안되는 일부 사람들의 취향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설득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수의 시민들은 이런 지적보다는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 갖기를 원하며 사회는 그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다만 후자의 시민들은 지구촌 주민으로서 나의 먹는 행위가 이 지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한 번은 생각해 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시민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준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런 사회를 유지할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모든 이웃들이 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채식은 목표나 수단이 되는 것이지 그 자체에 몰입해서 강박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채식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채식은 그냥 나의 섭생 중 한 방법이며 나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에 관심 가지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특별한’이 ‘보편적인’으로, ‘특이한’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건강한 환경과 지구에서 살기 위한 고민과 실천이 당연한 사회를 기대해 본다.

 

p.s.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어볼까요? 상추쌈과 두부, 버섯 조림이 당기네요.^^